표浪周/매일의 필사 30분

[매필]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의 시칠리아

D.RectorPyo 2021. 12. 16. 23:50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 몸이 내 몸이 아닌지라,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가까운 국내여행도 망설여 지는 요즘, 
단비같은 책을 만났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대신 여행하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문체가 다채롭지 못해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그때의 기분들을 속시원히 대신 묘사해주는 김영하 작가의 글. 

 


이 대학은 강원도 원주의 캠퍼스에도 비슷한 노천극장을 지었다. 토지문화관이 지척인 이 캠퍼스는 커다란 저수지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 극장의 무대는 바로 그 저수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신촌 캠퍼스와 원주 캠퍼스 사이에는 교직원과 학생들을 위한 무료 셔틀버스가 다녔는데 나는 가끔 별다른 이유 없이 그 버스를 타고 원주에 가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는 노천극장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지붕이 없는 그곳의 계단식 객석에 앉아 아래쪽의 무대를 내려다보면 몇 그루의 전나무 뒤로 물결 잔잔한 저수지가 보였다. 그것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아름다운 광경인데 특히 주변 숲에 일제히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더욱 장관이었다.

2007년 겨울, 나는 시라쿠사와 타오르미나에서 한동안 기시감에 사로잡혀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그리스식 극장 때문이었다. 이십 년 전의 그 노천극장이 거기, 시칠리아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라쿠사의 퇴색한 석회암계단에 앉아 저멀리 희붐하게 빛나는 지중해의 수평선을 보며 열아홉 살의 봄에 경험했던 찬란한 행복을 회상했다. 모두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손을 높이 쳐든 채 <젊었다>를 부르던 그 날을. 그럴 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 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타오르미나의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나는 그때의 노래를 소심하게 웅얼거린다. 간단한 가사를 계속하여 반복하던, 그래서 신입생들도 쉽게 따라 배울수 있던 그 응원가는 이렇게 끝난다. 그대여, 그대여어어,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 


어느새 능선위로 해가 넘어가고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스쿠터를 몰아 중턱에서 숨을 고르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상쾌한 습기가 얼굴에 감겨들었다. 안개를 뚫고 해발고도 제로의 아파트로 돌아오자 아내가 이제 돌아오냐며 반색을 한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도 우리는 한 스쿠터에 앉아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낯선사람처럼 서먹했다. 아내도 그렇게 느꼈는지 내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산 위에 뭐가 있었어?"
글쎄, 산 위에는 뭐가 있었을까? 포도밭, 절벽, 바위들과 금잔화, 레몬이 열리는 나무와 농부들, 트랙터 같은 것들. 나는 그런것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했고 카메라에 담아온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서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기생수>라는 만화에서 외계의 생물이 지구인인 주인공의 일부,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이 되어 살아간다. 그렇듯,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


 

Isla del sol의 한 주말에 만난 마을 축제
Copacabana, Boliva. 볼리비아의 첫 인상을 담당한 아름다운 마을.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형광 광고판
절대 사진으로 표현할수 없는 "달빛이 이렇게나 밝구나"를 알게해준 Isla del sol의 달

 

10주년이 되면 꼭 다시 배낭여행 하리라 다짐했었던 2012년 나의 남미.
이젠 여러 사정으로 기약없는 다짐이 되어버렸지만, 꼭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주었으면 하는 곳.